> 대댐회 소개 > 창립배경 및 목적
 
 
1925년 프랑스의 Grenoble에서 개최된 "제5차 수력발전총회와 과학발전을 위한 총회
(Fifth Congress on Hydro-Electricity and the Congress on the Advancement of Science)"에 참석중이던 일부기술자들에 의해 동회와 같은 전문단체의 창설에 인식을 같이하여 배태되었다고 한다. 1926년 스위스 Basel에서 개최된 세계동력회의(WPC : World Power Conference, 현재 WEC로 개칭) 분과회의에서 본회창립에 필요한 정관(Constitution)작성 등 준비작업을 프랑스에 위임하였다고 한다. 1928년 7월 6일 Paris에서 개최된 "국제 발전 및 배전 연맹 총회(International Union of Producers and Distribution of Election Power)"에 참석중이던 프랑스, 루마니아, 영국, 스위스, 미국, 이태리 등 6개국의 대표가 발기인으로서 임시집행위원회(Provisional Executive Committee)를 구성하고 Paris에 중앙사무국을 설치함으로써 ICOLD의 창립을 보게 되었다.
 
 
WPC 회의에서 댐기술 및 재정에 관한 독립성을 ICOLD가 견지 하면서
회의소집 등은 WPC와 공동으로 운영키로하고 명칭도 "International Commission On Large Dams of the World Power Conference"로 개칭하였다. 그리하여 제1차 집행위원회는 1930년 London에서, 제1차 총회는 1933년 Stockholm에서 개최하였으며 매년 개최되는 집행위원회 (최근 “연차회의”로 개칭)는 1939-1945년에 걸친 세계 2차 대전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총회는 매 3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ICOLD의 정관과 내규(By-Laws)의 골간은 1963년 Paris에서 개최된 제31차
집행위원회에서 이태리 출신의 Claudio Marcello 총재재임시 채택되었다고 한다. 그간 ICOLD가 댐 기술발전에 공헌한 업적과 다목적댐 등 대규모댐의 출현을 바라는 시대적 요망에 따라 1967년 Istanbul에서 개최된 제35차 집행위원회에서 WPC로부터 완전독립하기로 의결되었으며 이는 당시 J. Guthrie Brown 총재의 역할이 컸었다고 하며 명칭도 짧아진 오늘의 ICOLD로 원상회복되었다. 전후 12년간(1955-67)에 걸친 조직활성화 노력에 힘입어 ICOLD는 그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회원국의 신장을 도모하여 왔으며, 년도별 회원국 현황을 보면 1933년 21개국, 1955년에 38개국, 1967년에 61개국, 1984년에 75개국으로 꾸준한 증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집행위원회와 병행하여 열리는 총회(Congress)에서는 그때마다 대두되고 있는
관심사에 대한 4개주제별로 200-300편(6000 Page)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총회참석자는 매회 증가되어 1500-2000면에 이르고 있다. 또한 1987년 55차 집행 위원회로부터 현안문제에 대한 기술심포지움을 집행위원회 기간중에 개최하여 그간 주로 사무적인 ICOLD운영문제를 다루어 왔던 종래의 집행위원회의 형식으로부터 탈피하여 기술문제를 깊이있게 토론 발표함으로써 댐기술인의 관심과 환영을 받게 되었다.
 
 
26개 기술분과위원회를 설치 운영하여 분야별로 심도 있는 기술보고서를
발간하여 댐 관련 기술의 발전에 크게 공한하고 있다. ICOLD 조직은 임기 3년의 총재 1인과 6인의 부총재(대륙별)로 구성되고 중앙사무국에 제업무를 총괄 집행하는 사무총장 1인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