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댐 정보 > 댐이란 > 댐은 왜 필요한가?




인류의 4대 문명은 모두 큰 강 지역에서 발달하였다. 큰 강은 생명의 근원인 물을 무한히 공급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때때로 가공할 위력으로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신성하면서도 극복하여야 하는 도전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다행히도 인류는 물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즉, 물을 취하되 그 흐름을 제어하는 인공의 시설물인 댐이나 제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댐(Dam)은 “하천의 흐름을 막아 그 저수를 생활 및 공업용수, 농업용수, 발전, 홍수조절, 기타의 용도(특정용도)로 이용하기 위해 흙, 암석 또는 콘크리트 등으로 만든 인공의 차수 공작물”, 제방(levee 또는 dyke)은 “유수의 원활한 소통을 유지시키고 보호하기 위하여 하천을 따라서 흙, 나무, 돌 등으로 축조한 공작물”을 말한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댐은 BC 2550년경에 축조된 Sadd-el-Kafara댐으로서 이집트의 나일강 동부 강변에 있는 Wadi Garawi 지역에 있으며, 홍수방지용으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add-el-Kafara댐의 단면도


우리나라의 댐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벽골제(전북 김제, AD 330년 완성, 높이 4-6m, 길이 약 3㎞이상)이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댐형의 저수지인 사야마 이케 보다 오래된 저수지이다.
현재 전국적으로는 약 18,000개의 댐이 있으며, 가장 높은 댐은 평화의 댐(높이=125m)이며, 이들 댐중 약 98% 이상이 흙댐이나 록필댐 등의 필댐(fill dam) 형식이다.



(a) 전경


(b) 장생거 수문
벽골제의 전경 및 장생거 수문


*삼국시대

우리나라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다우지역에 속하며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미작농업을 일찍 부터 발달시켰다. 따라서 물관리의 중점은 농업용수의 개발이었으며 기록상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축조된 저수지는 벽골제이다. 벽골제는 「삼국사기」에 신라가 축조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서기 330년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이 대립하고 있던 때이므로 백제의 축조로 보는 것이 사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로 되어 있다.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알려진 저수지로는 김제의 벽골제를 비롯하여 눌제, 황등제, 시제, 제천의 의림지, 대제지, 밀양의 수산제 공검지 영천의 청제 등이 있다.
6세기 중반부터 8세기말까지의 시기에는 수리관계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기는 3 국이 영토 확장을 위해 서로 다투었고 고구려와 백제가 나, 당 연합세력에 의해 멸망하고 이어 통일신라가 당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던 시기이다. 이 사실은 국가의 집권적 통치력과 수리사업의 상관관계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즉 수리사업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수리사업의 성쇠는 집권적 통치력의 강약과 비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삼국시대 이래의 수리시설은 골짜기 물이 평지로 흘러나오는 산곡의 입구에 제방을 쌓거나 못이나 늪에 제방을 쌓는 형태, 즉 제언이 주종을 이루었다. 좁은 개울물을 끌어들여 관개수로 활용 했을 터이지만 후대의 방천 혹은 보(천방)와 같이 하천을 다스려서 관개수로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일반화되지 않았다. 하천의 수면과 경지의 높이에 차이가 있어 물을 끌어쓰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한편, 벽골제, 눌제, 황등제, 합덕제 등 많은 저수지(댐)들이 저수기능을 잃은 반면 의림지는 아직 저수기능을 하고 있다.


눌제 (전라북도 정읍시)

황둥제 (전라북도 익산)

합덕제 (충남 당진군)

의림지 (충북 제천시)


*고려시대

후삼국을 통일(918)한 고려는, 신라멸망의 원인이 토지국유제가 무너지고 지방토호가 대지주 형태로 강성해짐에 따라서 중앙집권제가 무너졌음을 거울삼아, 초기에는 토지국유제의 확립을 추진하고 동시에 벽골제의 중수 등 치수와 이수 및 개간에 힘썼다.
후반기에는 왜구 및 북방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내습과 안으로는 쉴사이 없는 정치적 변란 등으로 국운은 기울기 시작하였으니 치수나 수리사업이 활발치 못하였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는 한해와 수해의 연속적인 내습으로 농업생산에 심대한 타격을 입어 왔다. 수해는 그런대로 일부지역에 희생이 있을지라도 다른 지역은 오히려 풍작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한해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고려시대는 치수나 수리시설이 부족하였던 관계로 가뭄이 미치는 영향은 컸었다. '고려사'에 기우제에 관한 기록이 많고 1198년(신종1년)에 산천을 보전하기 위하여 산천비보도감을 설치한 것 등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의 치수나 수리는 자연을 극복해 보려는 의지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자연의 개조를 내용으로 하는 국토개발이 활기를 띨 수는 없었다.
이 시기의 새로운 현상은 간척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된 점을 들 수 있다. 14세기 몽고족의 침입에 맞서 싸우던 고려는 군ㆍ민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해안지대나 도서연안에 방조제를 축조하고 경지를 개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수리사업 역사상 새로운 진전이었다. 간척사업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서해안 일대에서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농업이 국가의 전 산업이었으므로 관개를 중심으로 하는 수리행정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고려시대(성종15년)에 이미 공조산하에 우수부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아 우리 선조들이 농업발전을 위해 수리에 얼마만큼 깊은 배려를 하고 있었던가를 집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 초기에 설치한 제언부가 조선시대 수리행정에 적지 않은 공적을 남긴 것은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지만, 이 기관도 임진왜란 이후 문란해진 국가기강을 회복시키면서 수리사업을 다시 궤도에 올리는데는 힘겨웠던지 1683년(숙종9)에는 그 기능을 비변사로 이관하였다가 1731년(영조7) 비변사의 산하기관으로 편입되었다. 비변사는 그 당시 전국에 걸쳐 날뛰던 왜구에 대비하기 위하여 설치(1547년)한 군국기무를 총괄하는 기관이었다. 수리행정을 이 막강한 군기관에 예속시킨 것은 마치 오늘날 강력한 산림행정을 위해 산림청을 농림수산부에서 분리하여 경찰권을 가지고 있는 행정안전부에 소속시킨 것과 비슷한 사정이라고 생각된다.
수리시설에 대하여는 수령이 직접 감독을 맡으며 제2차 관청으로 관제사 그리고 주무조 또는 제언사가 그 임무를 맡았다. 그러므로 당시에 있어서 수리행정의 진작은 무엇보다도 수령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었다.
조선은 건국초기에 특히 권력의 강화와 국가재정의 확보를 위하여 치수와 수리사업을 국책적 차원에서 추진하였다. 이조는 유교를 국가사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농업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컸다.

*근대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치수사업은 산미증식계획과 철도ㆍ도로 등 공공시설방호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하천개수 공사 실시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총독부는 1915-1928년까지 14년간에 걸쳐 대영강, 청천강, 대동강, 재영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용흥강, 성천강, 만경강 등 14개 하천에 대한 1차조사를 끝내고 이어서 1939년까지 압록강, 두만강, 안성천, 삽교천, 동진 강, 형산강, 안변남대천, 성천남대천, 수성천, 금진강 및 서천남대천 등 11개 하천을 조사하였으며 결과적으로 1-2기를 통하여 실시한 하천 조사는 25개 하천에 달하였다.
1차 하천조사 사업이 끝날 무렵부터 일제는 식량조달에 있어 홍수피해가 큰 만경강 등 주요하천의 중요부분에 대한 하천개수를 1940년경 거의 매듭을 짓고, 1925-1945년 일재패망 때까지 대소 715개 하천에 대한 치수사업을 실시하였다.
한편 수력발전을 위한 자원조사도 병행하여 1911-1914년까지 1차 조사, 1922-1929년 까지 2차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1936년 이후 6개년 사업으로 전력통계 자료조사라는 명목하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대상으로 3차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 당시 전국적으로 조사된 수력지점수는 154개소이고 포장수력은 643만 6,600Kw에 달하였다.
1945. 8.(해방당시) 현재 일본은 우리나라 전 포장수력의 27.1%에 해당하는 174만 4,800Kw의 수력(29개 지점)을 이미 개발했고, 공사중인 것이 20.9%에 해당하는 134만6,700Kw(10개 지점)로 서 전 포장수력자원의 48.0%가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에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 포장수력자원의 80.0% 이상이 북부지역에 편재해 있었고, 이미 개발이 끝났거나 개발 중에 있는 것의 대부분이 북쪽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수력에너지의 북부편재가 급기야는 남농 북공정책을 유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광복 후에는 남북간의 심한 전력불균형을 노정하게 되었다.
일제치하에서 건설된 수력발전용댐을 살펴보면, 압록강수계에는 부전강에 부전호댐(높이 76m, 1929), 장진강에 갈전댐(높이 55m, 1936), 및 몌물댐(높이 20m, 1936), 허천강에 연두평댐(높이 100m, 1940), 황수원댐(높이 60m, 1940), 내중리댐(높이 43m, 1940) 및 사초평댐(높이 86m, 1944) 그리고 섬진강수계에는 관개용 댐을 겸한 운암댐(높이 26m, 1928) 등의 콘크리트 중력식댐을 건설하였다.
근대에는 식량증산시책으로 토지개량사업이 활발히 추진되어 많은 관개용댐이 건설되었다. 관개용댐은 남북한 합하여 256개이고, 그 중 높이15m 이상의 댐은 63개이며, 그 가운데 남한이 48개 북한이 15개 이였다. 일제치하 남한에 건설된 높이 15m 이상의 관개댐은 콘크리트중력식인 대아 구댐(높이 33m, 1922)등 87개 이다.
근대에 건설된 생활용수댐은 부산의 법기댐(높이 25m, 1939, 콘크 리트댐) 등 10개에 불과하며, 주로 일본인 거주지를 대상으로 하는 생활용수공급이 목적이었다.

*현대

댐은 건설목적에 따라 여러 기관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데, 다목적댐, 생공용수댐이나 수력발전댐, 하구둑의 경우 같은 목적이라도 건설 당시의 주체에 따라 서로 다른 기관이 관리하고 있는 실정으로 다목적댐과 홍수조절댐은 한국수자원공사가 관개용수댐과 방조제는 한국농어촌공사 관리하고 있다. 이 중 1천 2백여개소의 대댐에 대한 관리현황을 살펴보면, 한국수자원공사가 15개(4개소 건설중)의 다목적댐과 15개소의 생공용수댐, 1개소의 홍수조절댐(3개소 건설중) 등 총 30개소(2.1%)를 관리하고 있고,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및 지역별 발전주식회사 등은 발전목적의 댐 20개소(1.6%), 한국농어촌공사에서는 주로 관개용수댐 796개소(65.6%), 시·군·구 등 지자체에서 367개소(30.2%)를 관리하고 있다.

표 전국의 댐 현황(관리기관 및 건설시기별)
(단위 : 개소)
관리기관\건설시기 '45년 이전 '46~'59 '60~'69 '70~'79 '80~'89 '90년 이후
한국수자원공사 0 0 4 5 6 15 31
한국수력원자력 4 1 2 3 1 9 20
한국농어촌공사 1,461 625 533 330 187 176 3,312
지방 시·군·구 8,093 1,416 3,079 1,209 356 175 14,328
총 계 개 소 9,558 2,042 3,618 1,547 550 366 17,681
비 율 56.5% 9.9% 21.5% 8.4% 2.5% 1.2% 100%


지방 시·군·구에서 관리하는 14,570여개소의 소규모 댐은 지역적으로 경북, 경남, 전남, 전북지역에 전체의 80% 이상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 지역의 유효저수량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하천변에 제방을 축조하여 홍수를 막고, 저수지를 축조하여 벼농사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확보한 기록이 있으며, 근대에 들어 일제시대에 치수위주의 하천 정비와 더불어 부분적으로 관개용댐 및 발전용댐이 건설되었다.
해방 후 미군정을 거쳐 제 1, 2공화국 시대에 우리나라 수자원정책의 근간은 관개답의 확장을 위한 농업용수의 개발과 생·공용수 공급, 수력발전 등 주로 이수위주의 단일목적댐을 건설하여 왔다. 이 시대에는 내무부 토목국 내에 이수과가 있어 용수개발과 수력발전 개발업무를 주로 담당했다는 사실로도 이수 이주의 수자원 정책을 잘 나타내고 있다.
'60년대 이후 제 3공화국 시대에 들어와 국토개발의 기치를 내걸고 내무부 토목국이 경제기획원 국토청이 되고 다시 건설부로 분리·독립되면서 수자원개발은 다른 국토개발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으며 건설부에 새로이 신설된 수자원국이 중심이 되어 댐건설 정책이 수립·추진되었다. 그리고, 1962년에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추진과 더불어 단일목적댐과 함께 다목적댐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이 기간 중에는 댐 건설의 양적 팽창과 더불어 댐 건설 기술면의 질적 향상에도 많은 진전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개발과 맞추어 치수위주의 하천관리를 위한 규제법 성격인 하천법이 1961년에 처음으로 제정되었으며 몇 번의 개정을 거쳐 지금까지 하천관리 및 수자원 개발의 모법 성격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우리나라 최초로 섬진강 다목적댐이 축조되었으며, 한강 등 4대강 유역을 중심으로 수자원 종합개발을 위한 유역조사사업을 원활히 추진, 시행하기 위하여 외국의 기술지원 하에 대규모의 유역조사단을 편성, 운영하였으며, 유역조사에서 조사된 유역별 수자원 현황 기초 조사자료를 토대로 하여 정부의 수자원개발 기본계획 수립과 다목적댐 건설사업의 선정에 기초자료로 활용하게 되었다.
한편, 1965년 9월에 4대강 유역의 수자원을 종합적으로 개발하기 위하여「수자원개발 10개년 계획(‘70~’80)」을 수립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제도정비 계획의 일환으로 “특정다목적댐법”을 제정하였으며, 이 계획에 의해 ‘70년대에 그 시대 동양 최대의 다목적댐인 소양강댐을 비롯하여 안동댐, 대청댐 등 다목적댐이 건설되었다.
“특정다목적댐법”의 주요 규정내용은 「다목적 댐의 건설 및 관리에 관하여 하천법 특례에 관한 사항과 건설투자금의 회수 이용 및 댐 이주민의 지원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함으로써 다목적댐의 건설을 촉진하고 수자원을 합리적으로 개발 이용하여 국민 경제의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1966년 4월 23일 법률 제1785호로서 공포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수자원 개발은 주로 이수 및 치수위주의 대규모 다목적댐을 건설하기 위한 정부계획에 따라 농업 및 생·공용수의 공급과 홍수조절, 수력 발전을 목적으로 댐을 건설하게 되었으며, ‘80년대 들어 수자원 관리에서 수질관리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80년대 초 보사부에 환경청이 신설되어 초보적이나마 공공수역에서의 수질관리 업무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하천 및 저수지 수질관리의 중요성은 수자원정책에도 반영되어 1990년대에 수립된 수자원장기종합계획(‘91~2011)에서 처음으로 수자원 관리 및 보전이라는 비구조물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추가되고, ‘90년대 들어서는 정부의 댐정책이 이수·치수·환경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중규모 댐 건설로 전환이 되었다. 또, 환경보전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널리 인식되면서 보사부 환경청도 환경처로 독립하면서 국가 수자원 관리에서 환경처의 역할이 점차 강조되었다.
이와 더불어 ’81년에 환경보전법에 주요 공공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토록 규정하였으나 형식적인 사업절차의 하나로 시행되던 것이 ‘90년에는 평가 대상 사업의 확대, 주민의견수렴, 사후관리 등을 도입하여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고 ’93년에는 환경영향평가법이 제정·공포되어 사업 계획 확정 이전단계에서 환경영향 평가를 시행하여 환경부장관에게 협의토록 하는 등 신규 건설 사업에 환경적인 문제가 보다 강조되게 되었다.
이러한 차에 ’91년의 낙동강 폐놀사고를 계기로 건설부의 상수원관리와 하수처리 계획 업무가 환경처로 이관되었고, 다시 ‘94년 초 낙동강 수질사고의 여파로 건설부의 상하수도 업무 전체가 환경처로 이관되었다. 한편, 이 시대에 치수 관리 업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자연재해의 방재업무도 건설부에서 내무부로 이관되어, 건설부에는 전체 수자원 업무중에서 일반 하천관리, 다목적댐과 광역상수도 개발 등만 남게 되었다. ’94년 말에는 정부조직의 대 개편으로 수자원 관리를 맡고 있던 건설부가 교통부와 통합되면서 건설교통부로,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조직 개편과는 관계없이 전체 용수수요의 2/3를 차지하는 농업용수는 농림수산부에서, 수력발전은 통상산업부에서 계속 담당하였다.
이처럼 정부의 수자원 개발·관리정책에 대한 구조적인 변천과 더불어 댐 정책 사업면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1910년대 초반 일제하에서부터 수자원개발을 전제로 하여 본격적으로 하천조사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약 90여년간 수자원에 대한 조사 및 개발사업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수자원개발사업의 성격면에서 변천해 왔다. 이 기간을 크게 4단계로 특징지어 볼 수가 있다.

· 1단계(~1960년) : 치수위주의 하천개수 및 단일목적댐(농업용, 발전용) 건설 시기
이 시기에는 장기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 남북한 14개 하천에 대하여 거의 알려 지지 못하고 있는 하천에 대해 하천조사를 실시하면서 이 조사성과를 토대로 하천개수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이를 기초로 하여 치수 위주의 하천 개수계획이 1940년까지 계속 보완 · 확충되면서 하천 개수사업이 수행되었다. 이 단계에서 수행한 주요성과로는 현재도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는 1928년 8월에 발행된 “조선하천조사서”를 들 수 있다.
1940년경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수력발전, 관개 및 생 · 공용수공급 등 이수측면의 수요가 증대되어 하천을 부분적으로 산업개발에 활용케 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치수의 우위성 때문에 그 동안 거의 손이 닿지 않았던 이수를 위한 기타 목적 즉 수력발전, 용수공급 등에 대해서 하천을 이용하게 되었으나 각 목적간에 긴밀한 횡적인 조정이 이어지지 않은 채 지역적이거나 국부적으로 계획되고 개발 되는 등 단일목적으로 수자원개발사업이 수행되었다.

· 2단계(1960년대) : 종합적인 수자원 개발을 위한 초기 다목적댐 개발 시기
이 단계는 하천유역개발의 새로운 기법이 도입된 시기이다. 이 기간에는 유역 수자원종합개발의 핵심인 다목적댐 건설에 의해 치수와 이수를 동시에 해결하는 다목적이고 수계를 일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개발을 기본방향으로 한 유역조사사업이 착수되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섬진강)등 4대강에 비하여 전반적인 조사가 외국기술진과 국내관민 500여명에 의하여 6년간 걸쳐 수행되었다. 본 조사의 범위는 수자원관련 전부문을 포괄한 4대강 유역별 수계를 일관한 종합적인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유역조사보고서에서 건의된 유역별 종합개발계획의 시안을 기초로 하여 4대강 유역종합개발계획(1970~1981년)을 수립하였다. 동 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한 제도 및 조직 마련의 일환으로 1966년『특정다목적댐법』제정하고 1967년 한국수자원개발공사 창립하였으며, 1970년 8월에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4대강 유역종합개발위원회를 설치하여 부처별 사업의 총괄, 조정, 통제 등으로 성공적인 사업목표를 달성하였다.

· 3단계(1970 ~ 1980년대) : 본격적인 대규모 다목적댐 건설 시기
이 시기에는 인구증가 및 본격적인 산업발달에 따른 급격한 용수수요 증가에 안정적으로 대처하고 항구적인 홍수피해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본격적으로 다목적댐이 건설되는 시기로, 1981년부터 4대강 유역종합개발위원회의 기능이 유명무실하게 됨에 따라 부처별 사업의 총괄, 조정, 통제가 미흡한 상태로 부처별로 수자원개발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 기간에는 전단계 계획에서 추진된 다목적댐의 완공과 다목적댐을 수원으로 한 광역상수도사업의 추진이 주요 성과라 할 수 있다

· 4단계(1990이후) :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중규모 다목적댐 전환 시기
1970~1980년대 활기를 띠었던 대규모 다목적댐 건설은 1990년대 들어 댐 건설 적지의 감소와 댐 주변지역 고립에 따른 지역낙후에 대한 지역주민의 반대, 토지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보상비 상승, 환경에 대한 국민의식의 전환 등 댐 건설 여건의 변화로 대규모 댐 건설 위주의 정부정책이 이수 · 치수 · 환경보전을 목적으로 중규모 댐 건설로 전환되어 부안, 밀양, 용담, 횡성, 장흥, 군위댐등 중규모의 다목적댐이 건설되었고 부항, 성덕, 영주, 보현산댐등이 건설중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출범으로 댐이 건설되는 지역의 지자체는 타 지역의 물 공급을 위해 피해를 본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어 신규댐의 건설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고 정부에서는 댐 건설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댐 사업은 물 수요를 충족시키고 홍수를 방지하며 수력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수자원개발로써 필연적 소산이었으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댐 건설은 환경의 변화를 초래하며 최근에 다목적댐 개발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민감한 반응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인 요소도 많지만, 댐 건설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요소로 부각되어 이의 해소 없이는 금후의 댐 건설이 어렵게 되었다. 또한 댐 개발로 인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하천 유지용수를 공급함으로서 갈수시 하천 생태계를 보전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댐의 건설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업이 아닌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하고 복원하는 사업임을 인식시킬 수 있도록 자연복원 시스템을 도입하고 자연은 무한재가 아니라 유한재라는 인식을 갖고, 국토의 환경용량을 고려한 자연 생태적 측면을 추가하여 수자원 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개념의 정립이 요구되고 있다.


댐관련 정책 변천 과정


표. 년도별 댐건설 현황(건설중인 댐 포함)
구 분 다목적댐 생·공용수댐 발전용댐 관개용댐 홍수용댐 합 계
19 63 21 1,114 1 1,216
1910~1940 - 4 1 31 - 36
1941~1945 - 3 2 94 - 99
1946~1955 - - - 52 - 52
1956~1965 1 5 2 222 - 230
1966~1975 1 13 2 181 - 197
1976~1985 2 13 4 247 - 266
1986~1995 5 20 4 187 1 217
1996 이후 10 5 6 100 - 111
※자료 : 한국의 댐(한국수자원공사, 2000.7)보완

표. 유역별, 저수용량별 건설 현황(건설중인 댐 포함)
구 분 다목적댐 생·공용수댐 발전용댐 관개용댐 홍수용댐 합 계
전 체 19 63 21 1,114 1 1,214
유역별 한 강 3 5 10 112 1 131
낙동강 9 5 7 293 - 310
금 강 2 4 2 129 - 137
영산강 - 9 - 63 - 72
섬진강 3 1 1 98 - 103
기 타 2 39 1 419 - 461
저수용량별 ~1백만m³ - 19 1 811 - 831
1백만m³~1천만m³ - 18 14 268 - 300
1천만m³~1억m³ 8 20 15 35 - 63
1억m³~10억m³ 11 6 1 - 1 18
10억m³ 이상 2 - - - - 2
※자료 : 한국의 댐(한국수자원공사, 2000.7)보완